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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기]통영 여행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2-11-23 | 조회수 | 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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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아침 여섯 시 집을 나서니 밖이 깜깜하다. 날씨는 30% 비가 올 확률이라더니 아침에 뉴스를 보니 맑음이다. 매일 긴 패딩을 입다가 짧은 패딩을 입었더니 약간 쌀쌀하다. 그러나 한낮에는 이십도 가까이 올라간단다. 일곱 시 대전출발, 통영에 열 시 도착.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 백 이십여 명이 출발하는 여행이기에 휴게소 선택도 필수이다. 잘못 들어간 휴게소 화장실, 공사 중이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배려심 깊은 사람들 덕분에 늦지 않게 출발해서 예정 시간 보다 십 분 일찍 도착.
통영에 오니 먼나무 가로수가 반긴다. 낙엽이 지는 계절 초록색 잎에 빨간 열매는 신기하고 아름답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무슨 나무냐고 물으면 먼나무라 대답하면 그게 답인지 진짜 나무 이름인지 다시 묻게 되는 나무, 예쁜 나무 이름 먼나무다. 통영은 고성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곳으로 백 오십 일개의 섬이 있다. 1995년 도농 통합 당시 충무시와 통영군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통영시가 되었다. 해로교통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부산에서 여수를 잇는 항로의 중심지였고 현재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남해안대로 등으로 육로교통이 발달하였다. 통영은 경상, 전라, 충청을 담당하는 3도 수군을 총지휘하는 통제영이 있던 곳이라는 뜻으로 통영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통영은 옻칠공예, 나전칠기의 중심지, 통영 누비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통영은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김춘수, 유치환 등 문화예술인들의 고향이다. 청마 유치환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 하나니라>는 시가 탄생한 우체국이 있는 거리를 버스로 통과 세병관에 도착하였다. 세병관은 서기 1605년에 지어졌고 290년 동안 3도 수군을 총지휘했던 곳으로 17세기 초에 건립된 목조 단층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역사성과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매우 큰 건물이다.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고, 일제 강점기에는 초등학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세병관 위에서 통영 시내와 바다가 훤히 보인다. 맑은 가을 하늘과 구름 사백여 년 전 왜적과 싸우던 선조들의 눈물과 땀이 씻겨지길 바라는 세병관 평화는 일제 강점기에 또다시 아픈 역사를 썼다. 지금은 24개의 계단이 그 시대의 것으로 남아 있다. 아름다운 새털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푸르른 바다, 상쾌한 바다 공기, 동포루 가는 길, 동피랑 마을, 짧은 언덕마을은 바다를 조망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작은 찻집이나 상점들로 바뀌었다. 동피랑 언덕마을에서 통영 시내 어디쯤을 가늠해보고, 바다를 보며 중앙 전통 시장으로 내려왔다. 코로나 전에는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쉴 틈이 없던 곳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복어, 멸치, 오징어, 아귀채, 곱창김, 도로에 즐비한 스티로폼 상자의 통영굴, 지나쳐 올 수만 없는 시장이지만 눈 풍년으로 마무리하고 이순신 공원에 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세계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13전 13승 불패의 해군 영웅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바다로 가서 바닷물이라도 만져보자고 하며 바닷가로 내려갔다. 물수제비를 떠본다고 여기저기서 돌을 던져 본다. 옆에 있던 대학생들 정말 잘 던진다. 공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길, 이순신 장군의 부하에 대한 사랑의 시가 새겨져 있는 돌비를 읽었다.
윗사람을 따르고 상관을 섬겨 너희들 직책을 다하였건만 부하를 위로하며 사랑하는 일 나에게 그런 덕이 모자랐노라. 그대 넋들을 한자리에 부르노니 여기에 차려진 제물을 받으시라
돌아오는 길 만추의 가을 들판 검은 살을 드러낸 논들에는 누군가 정확히 표현한 마시멜로가 흩뿌려져 있었다.
50+기자단 양정숙 기자(tomymel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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